신혼의 첫 위기. 망할놈의 혼수 NBA 2K11!! + 흰둥씨와신혼일기

많은 분들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예단, 혼수 이런걸로 다투곤 한다죠.
내가 더 많이 했니, 쟨 왜 나한테 이것밖에 안해주니, 이건 저쪽에서 내야하지 않나 등
되도록이면 내가 손해보지 않는 쪽이 되려고 신경 많이 쓰시더라구요.

저와 흰둥씨는 결혼 전 내가 계산할 것, 니가 계산할 것 나누는 것도 골치아프고
어짜피 결혼하면 공동재산이 될 돈가지고 니 것, 내 것 따지는 것도 우스워서
애초에 결혼자금을 합쳐서 모두 그 돈에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이건 물론 양가 도움 일절 안받고 모든 걸 저희 돈으로 해결하고
양가부모님도 이런 저흴 이해해주시고 예단, 함, 이바지 등 거추장스러운 형식들을 모두 생략해주신 덕분이기도 하죠.
혼수 역시 이미 둘다 자취를 하고 있던터라 왠만한 건 다 갖추고 있어서 큰 침대나 냉장고 정도 빼곤 딱히 살 것도 없었답니다.
덕분에 혼수에 들 돈이 확 줄어들어서 좋긴했는데 너무 혼수 준비하는 기분이 안나더란 말이죠(...)
그래서 각자 가지고 싶던 걸 골라서 혼수품목에 넣어두고 서로에게 선물하는 기분으로 혼수품으로 구입하자라고 합의했습니다.

그래서 흰둥씨는 절 위한 혼수품으로 뭘 해줬냐하면,

신혼여행 전 면세점을 이용해
할머니 속바지에서나 나올법한 천으로된 구식 동전지갑을 쓰던 저에게 빤딱빤딱 새 지갑과
여자치곤 너무할 정도로 없었던 화장품 그리고 평소 가지고 싶어하던 소가죽 가방을 선물해줬습니다.
처음엔 가방 하나였는데 면세점 할인혜택을 최대한 활용하려다보니 점점 늘어나서;; 나름 돈을 좀 썼는데
신혼여행의 백미라는 면세점 쇼핑에서 부모님 선물을 제외하곤 모조리 다 제꺼만 가득가득.
그래도 착한 흰둥씨는 군말없이 기분좋게 사주더라구요.

아,
사실 뭐라뭐라 군말을 했었는데 제가 마냥 신나서 잘 못들었어요.
"이런거 검둥이(귀염둥이의 줄임말인 겸둥이를 잘못 발음했던게 굳어져버린 손발오그라드는 애칭임.)한테 선물하는거 하나도 안아까워. 대신 난 혼수품으로 ○○○랑 △△△랑 □□□를 살께"라고 말했지만 고가의 선물들을 줄줄이 받은 전

그땐 이미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 후에도 딱히 뭘 사는게 없길래 '응? 뭘산다고 그랬더라? 그냥 넘어가는건가?'하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
이윽고 뭔가 하나씩 집으로 배달되기 시작합니다?

뭐, 시작은 그냥 평범했어요.
아바타(AVATAR) 블루레이
 
회사에서 3D 아이맥스로 단체관람했는데 흰둥씨가 이거 안봤다고해서 또 관람.
그래서 다음 대사가 뭔지도 알아맞출 정도인데 집에서까지 이걸 봐야하다니!
뭐, 그러나 제가 산 것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가격이라 대인배처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 더 옵니다?
The Life 블루레이 (디스크 4장)

저건 아름다운 지구에 이은 BBC의 초 역작이라며 꼭 사야한다고,
게다가 예약 발매한 덕분에 니콜 키드만 주연의 '황금 나침반' 2Disc를 껴줬다고 이건 돈 번거라고 했어요.
........................후.
근데 이건 저도 봤는데 대체 이걸 어떻게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감탄, 또 감탄!
한번 보기 시작하면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신기하고 경이로운 자연생태계를 초고화질로 잘도 담았더라구요.
그래서 이것도 패스.

그런데!!!!
뭐가 또 왔어요!!!
Legends: Live at Montreux 1997 블루레이

에릭클랩튼, 조샘플, 데이브 샌본, 마커스 밀러가 나오는 전설의 재즈 라이브라나요.
이건 정말 들은 기억이 없다고 우겨봤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
분명 혼수품목에 언급했다고 하는데 듣고보니 언젠가 뭔가 영어로 어쩌고 저쩌고 말한거 같기도 하고.
설마 영어로 말하면 내가 못알아듣고 대충 사라고 해버릴껄 간파당한건가!

그렇지만 이제까지의 그 모든 건 그저 애교일 뿐, 곧이어 평화로웠던 신혼생활에 피바람을 일으킬 무시무시한 것이 아직 남았다는 걸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

어느날 흰둥씨에게 전화가 왔어요.
세상이 험하다며 혼자있을 땐 음식 배달은 물론이고 택배도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흰둥씨가
"오늘 택배 하나가 도착할꺼예요. 아주 소중하고 귀한 물건이 가니 잘 좀 받아줘요.(<-존댓말할때부터 알아봤어야했음.)"
라고 하길래 뭔가 했는데 그건 바로
두둥. NBA 2K11!!

저희 부부는 서로의 취미생활에 관심을 가져주고 함께 즐기자 주의이고 
흰둥씨가 이제까지 그 어떤 것보다 좋아하고 신나해서 이왕이면 저도 저걸 배워서 같이 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달라고 하니 예전에 결혼 승낙받았을 때 다음으로 감격에 겨워 기뻐하길래
같이 하자고 하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어요.

그러나 전 'WOW' 만렙찍은 거 말고는 딴 게임은 관심도 없는 게임맹이고 집에 플스3가 있지만 저에겐 그저 먼지나 쌓이는 귀찮은 기기일뿐; 그런데 뭔 버튼이 이리 많은지 어려워하고 있으니 흰둥씨가 친절히 알려주더군요.

"딴거 몰라도 돼. X 버튼 누르면 패스하고 버튼 누르면 슛이야. 이것만 알면 끝! 쉽지?"
"오오. 이 게임은 버튼 두 개면 된다니 쉽네!"
사기치지마. -_-

그렇게 흰둥씨는 코비 브라이언트가 있는 LA 레이커스를, 저는 마이클 조던이 있는 시카고 불스를 선택해 게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애처가라고 불릴 정도로 절 위해주고 자타공인 다정다감한 최고의 신랑인 흰둥씨가 돌변했어요.
평소 NBA 2K9으로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초보라고 봐주고 자시고도 없이
게임 초반부터 현란한 패스에 넣었다하면 모두 골이 되고 2점슛, 3점슛, 덩크까지 넣는 흰둥씨(...)
거기다가 점수가 벌어질 때마다 깐죽깐죽거리며 한마디씩 하는데 듣고 있으니 뒷골이 땡기고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뭐야. 초보자 상대로 이렇게 일방적으로 하는게 어디있음? 좀 봐주면서 잘 가르쳐줘야지!!!!"
"헤헤. 여기서 더이상 어떻게 더 봐달라는 거임? 어후. 진짜 완전 봐주고 있다능."

점수는 순식간에 20점차로 벌어지고..

"아니, 오빠는 내가 가진 공 잘만 뺐는데 대체 공 뺏으려면 뭘 눌러야하는거야?"
"아, 그건 니가 수비할 때 버튼 눌러. 그럼 될꺼야."

그래서 정말 미친듯이 버튼을 연타해서 결국 공뺏기에 성공했는데 어? 뺏자마자 그자리에서 막 슛을 던지네요?
아;; 공격 시에는 버튼이 슛이었지;;
순식간에 30점차. ㅜㅜ

언제는 이 슛이고 X가 패스인 것만 알면 된다더니
30점차로 벌어지자 패스할 때 사람 지정하는 법 가르쳐주고
40점차에 슛할때 버튼을 눌렀다 때는 타이밍을 가르쳐주고
50점차에 버튼의 기능을 가르쳐주더라구요. -_-

"뭐야. 왜 이런거 이제야 알려줘? 이건 진작 알려줬어야지!!!"
"훗. 이걸 먼저 알았다고 해도 뭔가 달라질 꺼 같음? 헤헤."
"으아아*^%&*^(())$#@%@^&&*"

뭐, 그렇다고 제가 하나도 못넣진 않았어요. 제겐 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이 있지 않겠어요?
발로 컨트롤 하는 실력에 수비도 주렁주렁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조던한테 공이가면 쑥쑥 잘들어가더라구요.
초보치고는 꽤 하지않나해서 스스로 대견하고 으쓱해하려는 찰나,

"와. 마이클 조던은 그냥 막던져도 막들어가네. 역시 조던은 대단해!"
"....(빠직!)"

그렇게 전 첫 게임에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지는 거 싫어하고 승부욕 강한 저인데 아무리 처음한 게임이라도 맘대로 조작도 못했고
완전, 진짜, 정말, 더이상 어떻게 더 봐주냐며 얄밉게 깐죽거리는 상대에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깨졌다는게
열받고 분해서 미치겠더라구요.
압도적인 스코어로 이긴 흰둥씨는 루아를 붙잡고 승리자의 여유를 만끽하며 뒹굴거리는데 어찌나 얄미운지!!!


그 이후에 몇 번이고 도전했지만 번번히 전 쓰디쓴 패배를 맛봐야했어요.
그나마 중간중간 제가 진심 버럭했더니 깐죽거림은 좀 덜해졌고 나름 이것저것 가르쳐주기도 하는데 죽어도 져주진 않네요! 크르릉.

그렇게 요새 NBA 2K11을 둘러싸고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요즘은 흰둥씨가 출근한 틈을 타서 NBA 2K11을 플레이하면서 남몰래 특훈 중이랍니다.
이젠 덩크도 넣을 수 있고 리바운드도 할 수 있게 됐어요. 부지런히 연습해서 언젠간 꼭
이기고 말꺼예요!!!!!!! 기다려라 흰둥!!!


p.s - 그렇게 낮에 몰래 NBA 특훈하고 밤엔 도전했다 깨지고를 반복하는데!
어젯밤에 흰둥씨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진짜 이게 마지막이라며) 혼수품을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 음.
FIFA2011!

안돼에에에에에에. 이제 제발 그마아아아아아아아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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